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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보의 비급을 찾아서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작가 박서연은 최근 ‘업보(業報)’를 주제 의식으로 삼아 작업해 왔다. 작가는 이러한 동양의 존재론적 입장을 무협지, SF소설, 추리소설에 드러난 주술 및 제의적 판타지의 세계관 속에서 재해석한다. 그것이 무엇이고 이러한 작품 세계관이 동시대 미술에서 가진 함의는 어떠한 것인가?

II. 카르마와 연기의 세계 박서연의 작업이 천착하는 주제 의식인 ‘업보’란 카르마(karma)라고 하는 산스크리트어에서 기인한다. 카르마는, 업보라는 번역어처럼, 불교 용어에서 업(業)과 과보(果報)라는 두 개의 의미가 함축된 것이다.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하는,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이라는 뜻의 ‘업(業)’과 함께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이라는 의미의 ‘과보(果報)’가 합쳐진 말이다. 따라서 카르마 혹은 업보란 불교 용어에서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하는,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가리킨다. 즉 ‘세상에서 언행으로 짓는 선악이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라는 의미의 선/악, 행/불행, 원인(업)/결과(보) 혹은 행위(업)/결과(보)가 맞물린 불교의 윤리적인 사유인 셈이다.이러한 사유는 불교의 교리이자 철학인 연기(緣起) 사상에서 기인한다. “연기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하여 생기는 상관관계의 원리”이다. 업보의 원인과 결과란 결국 ‘일정한 우주적 법칙에 따라 생멸(生滅), 변화하는 현상’인 연기의 원리에 의해 따른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연기 사상은 음양 이론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우주론적 철학의 입장에서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점복(占卜)술의 원전으로 간주되는 유교의 주역(周易)과 달리, 인생의 고뇌를 해결하기 위한 우주적 원리를 고찰한다. 즉 개인의 길흉화복을 점치기 위해 우주의 원리를 살피는 유교의 주역과 달리, 불교의 연기 사유는 인간의 내외적 번민을 근본적으로 추적하기 위해 우주의 원리를 살피는 철학이라고 풀이할 수 있겠다. 이러한 카르마와 연기의 사상을 시각예술로 탐구하는 박서연의 작업은 ‘지금, 여기’의 현실 이전과 이후의 우주적 세계관을 원인인 인(因)과 조건인 연(緣)이 상호 관계하는 그물과 같은 것으로 간주한 것처럼 보인다. “우주 안에서 개인은 그대로 일체 세계에 통하고 일체 세계는 또한 개인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라는 의미의 ‘일즉일체(一卽一切), 일체즉일(一切卽一)’을 초현실주의적이고 표현주의적이기도 한 에너지 가득한 복잡다기한 화면 속에서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III. 판타지의 신비를 추적하는 비급 세상의 모든 이미지는 사실 혹은 현실에 대한 환영을 제공한다. 이미지란, 라틴어 어원인 ‘이마고(imago)’가 고대 로마 시대 장례식 때 ‘주검에 착용시켰던 마스크(masques mortuaires)’를 지칭했던 것처럼, 현실에 대한 부재적 환영과 관계한다. 부재적 환영? 고대 그리스 당시에 오늘날의 이미지와 동의어로 사용했던 판톰(Phantom) 또한 유령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이미지는 ‘있음을 유추하게 만드는 없음으로서의 환영’이었다. 여기서 이미지뿐만 아니라 판타지(fantasy)의 어원이 판톰이었음을 상기하자. 박서연이 천착하는 판타지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현실을 부유하는 유령인 셈이다. 그것은 실재를 유추하게 만드나 언제나 ‘실재의 부재’라는 상황을 전제한다.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허깨비와 같은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프랑스의 문화기호학자인 바르트(Roland Barthes)가 목도했던 사진 속 어머니란 ‘지금, 여기의 어머니가 아닌 그때, 그곳의 어머니’라는 ‘사실의 부재, 죽음의 소환’이었던 것처럼 이미지란 현실의 실재와 닮아 있는 유령이거나 죽음과 같은 환영을 제시한다. 그렇다. 이미지는 그것의 실재와 닮아 있는 까닭에 그것이 무엇인지 추적하는 열쇠를 제공하지만, 유령, 허깨비, 주검처럼 환영만을 제시하는 까닭에 그것의 구체적 실체를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판타지가 만드는 환영! 그 속에서 실체를 파악하는 일은 무엇일까? 박서연은 ‘업보(Karma)의 비급(祕笈)’이라는 제목의 작가 노트에서 그 단초를 제공한다. 여기서 한자어 비급의 사전적 정의는 “가장 소중히 보존되는 책(冊)”이다. 조선 정조 14년(1790)에 이병모가 이경화에게 편찬하게 하여 판각한 의서(醫書)인 광제비급(廣濟祕笈)을 보더라도, 비급의 역사적 쓰임새는 이러한 정의에 근간하지만, 박서연은 무협지 등에서 무림의 3대 보물로 거론되는 ‘무공이 적혀있는 책이나 물건’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그러니까 박서연은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혼미한 세계를 헤쳐 나가는 열쇠를 비급으로 은유하고, 혼종의 세상에서 마치 추리소설 속 탐정처럼 자기의 업을 찾아 나선다. 작가는 이 비급을 다음처럼 언급한다: “추리소설 속 탐정이 일말의 단서로 범인을 찾듯이,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통해 살기 좋은 이상향을 상상하는 내 회화의 ‘업, 운명’을 찾아 나가자는 의미이다.”박서연의 회화에서 비급은 무협지, SF소설, 온라인 게임 등에 등장하는 무수한 아이콘들로 상정된다. ‘제물을 태우는 제단, 주물로 뜬 사물, 용과 여의주, 눈이 여럿 달린 조류’와 같은 것들이 그녀가 자기 작품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비급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그녀에 따르면, “가상의 텍스트” 혹은 “현실 너머에 있는 기억, 상상에 의해 뒤섞인 세계” 속에서 “얻은 삶에 대한 교훈적 상징”을 의미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녀의 회화 속 비급이란 판타지 세계를 유영하는 존재이자, 그 속에서 판타지의 신비를 추적하고 해설하는 상징 혹은 판타지의 비밀을 푸는 열쇠라고 할 만하다. 그것이 그녀의 회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보자.

IV. 현실과 상상 경계를 유영하는 표현주의적 회화 박서연이 그리는 판타지는 카오스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것은 에너지가 팽배해 있는 무질서의 세계이다. 엔트로피(entropy), 즉 무질서도(disorder)가 증가한 상태의 무엇이다. 물리학적 개념으로 엔트로피는 ‘물질의 열역학적 상태를 나타내는 물리량 중 하나로 시스템에서 에너지의 흐름을 설명할 때 이용되는 상태함수’로서 “열의 이동과 더불어 유효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감소 정도나 무효(無效) 에너지의 증가 정도를 나타내는 양”으로 규정된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에너지 전이가 일어날 때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원리에 따라, 자연의 모든 시스템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높은 무질서 상태로 이동한다. 박서연의 회화는 에너지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상태, 즉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무질서의 카오스 상태를 표현한다. 그녀는 작업은 수채화나 유화로 추상표현주의적 방식의 거친 색면과 스트로크가 도드라진 화면을 리넨 천이나 캔버스 천 위에 올리면서 출발한다. 붓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긴 갈필과 그것 위에 투명하게 올라간 수채 물감, 그리고 바탕을 하나의 색면으로 두지 않고 덧칠로 거듭 쌓아 올려 만든 마티에르 가득한 불투명한 유화 물감은 상호 교차하고 침투한다. 그런 까닭으로 드로잉이 올라가기 전까지의 박서연의 회화는 때로는 산뜻한 스케치나 에스키스의 효과를 때로는 박락된 고대 벽화의 화면 효과를 낳는다. 에너지 가득한 일필휘지의 붓질이나 기운생동의 스트로크가 화면 위에서 뛰놀았던 까닭일까? 무의식적 제스처가 자리한 이 초벌 아닌 초벌의 추상 화면은 그 자체로 활발한 에너지가 감지되는 무질서와 불규칙성을 강력하게 드러낸다. 추상 화면 속의 이러한 무질서를 깨뜨리는 것은 화면에 오일 스틱이나 가느다란 선묘 형태의 오일 페인팅으로 올라서서 관객의 주목을 끌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드로잉이다. 박서연은 무협지나 SF 소설 등에서 등장하는 신화나 설화, 판타지 내러티브를 드러내는 인물이나, 오브제를 마치 아이콘의 도상처럼 등장시킨다. 그녀는 마치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은폐된 진실을 파헤치는 탐정이나 게임의 목적지를 찾아가는 모험심 가득한 탐험가처럼 화면 이곳저곳에 이러한 도상들을 배치하면서 관객과 함께 ‘수수께끼 그림지도 읽기’에 나선다. 그렇다. 이러한 도상들은 마치 현실인지 가상인지 가늠하기 힘든 수수께끼의 경계에 사는 존재이지만, 박서연은 이 도상들을 현실과 상상 사이의 혼미한 세계를 열어나가는 ‘비급’, 즉 무협지 속 ‘무공이 적힌 책이나 물건’과 같은 주요한 열쇠로 간주한다. 드로잉을 보자. 지구의 공전과 자전 주기에 따라 보름달에서 초승달로 변해가는 달의 형상과 더불어 화면을 수놓은 별자리 형상은 거대한 우주적 시공간의 기운을 불러온다. 현실의 공간을 유추하게 만드는 드로잉도 있다. 굽이굽이 화면 위에 흐르고 있는 강물 그리고 그것과 대비되는 성벽과 같은 건축물은 자연과 인간의 대비적 상징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뿐인가? 무속과 주술, 판타지가 뒤섞인 제의적 도상은 앞서 살펴본 비급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구름이나 연무와 같은 기체의 형상이 불안한 기운을 고조하는 가운데, 인간 속세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의미하는 듯 칡 나무와 등나무가 서로 얽혀 있는 도상이나 번제의 재단, 그리고 무엇인가 서로 둘러싸고 모호한 행위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일련의 드로잉은 이러한 제의적 분위기 속 비급의 역할을 담당한다.   박서연의 화화에서 탐구하는 ‘비급’은 무협지뿐만 아니라 SF소설, 온라인 게임 등에 등장하는 무수한 아이콘과 같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손에 쥔 마술봉, 연금술적 도상, 술잔 혹은 성배, 눈들(혹은 제3의 눈), 움막 혹은 텐트와 같은 도상, 불도저, 망치와 연장, 칼과 방패, 도끼, 촛대 혹은 등잔과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선묘에 덧붙여 비급의 도상을 강화하는 것은 일련의 패턴 문양이다. 화면 속에서 이곳저곳 자리한 텍스트 패턴, 화살을 든 천사 혹은 큐피드의 초상, 별, 조개 형상의 왕관, 조류나 꽃과 식물 문양과 같은 패턴화된 도상 기호는 이전의 선묘 드로잉의 양상을 화면 곳곳으로 확장하면서 표현주의 조형 언어의 복잡다기한 화면 속에서 일련의 질서 체계를 선보이는 내러티브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V. 수수께끼 그림지도를 해설하는 상상의 내러티브 박서연의 해독 불가한 비선형적 표현주의 세계는 화면 곳곳에 카르마의 비급이 자리하면서  비로소 일련의 선형적 내러티브로 해독되기에 이른다. 그것이 무엇인가?   박서연이 최근의 개인전에서 5개의 캔버스를 이어 붙여 만든 선보이는 〈기(氣)를 승화시키는 법〉(2024) 연작은 대표적이다. 이 연작은 인간이 고래로 대별되는 자연을 포획하고 구속했던 인간 문명의 만행을 고발하고 인간이 자초했던 업보를 반성적으로 성찰한다. 고래의 몸에 꽂힌 작살을 빼내고 상처를 치유하거나 무수한 고래의 희생을 위무하는 제례 의식을 거쳐 종국에는 인간과 자연의 화해와 공생의 메시지를 순차적으로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상상으로 직조하는 박서연의 비언어적 내러티브는 그녀의 수수께끼 그림지도라는 비언어 도상을 마치 텍스트처럼 아니 할머니의 구수한 구전 동화처럼 풀어낸다. 박서연의 작업은 카르마라고 하는 화두를 연기의 사유로 천착해 나가는 상상의 표현주의 회화라고 할 만하다. 무협지, 판타지 소설 등에 등장하는 다양한 상상의 이야기를 자신의 회화 안에서 새롭게 변주하고 되살려내는 방식으로 수수께끼 그림지도를 만들고 그것을 관객과 함께 그 의미를 찾아 나선다. 가히 업보의 비급을 찾아 나서는 상상의 회화라고 하겠다. (20240720)